"120시간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는 120시간 노동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극한 노동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과 1970년대 한국에서도 120시간에 도달하기 직전에 비극이 벌어졌다. 방송업계 종사자들도 80시간, 90시간을 촬영을 버티다 120시간 스케줄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며 결국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게임 및 IT 업계의 ‘크런치 모드’에서는 이미 과로사의 문제가 만연했다. 일부 스타트업 대표들이 120시간을 외치는 이유도 간단하다. 120시간을 넘기면 모두가 공멸한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일을 시킬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최장 시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모습이 세상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바뀌고 있다. K-노동은 120시간이라는 신개념을 탄생시킨 역사가 있다. 나라의 리더가 노동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혹독한 일터가 나타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번 대선에 큰 기대가 없는 나로서는 후보의 가족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더라도, 기차에서 신발 신고 발을 올리더라도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120시간 발언만큼은 극한의 공포심이 든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적어도 일터의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후보에게만큼은 표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방송과 노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락되지 않은 내일 (0) | 2022.02.02 |
---|---|
[경향] NGO 발언대 - 지도를 보며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0) | 2021.08.16 |
[경향] NGO 발언대 _ 새해에도, 7명의 퇴근길은 무사하지 않습니다 (0) | 2021.08.16 |
21세기 '120시간 노동'과 18세기 굴뚝청소 어린이 (0) | 2021.08.16 |
퇴근하면 스마트폰 만보기에 '5만보'가 찍히는 삶 (0) | 2021.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