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초, 흔한 술자리의 풍경을 돌이켜 보면 드라마 <이태원클라쓰>를 빼놓을 수 없다. 1차를 가든, 2차를 가든, <이태원클라쓰>의 OST가 나왔다.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도 이 드라마로 흘러갔다. 특이하게도, 웹툰에서 이미 결말이 나왔다보니, 사람들이 딱히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이를 잘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주된 화두였다. (사람들마다 공감하는 캐릭터가 달랐는데, 이게 약간... 각자의 자의식과 자존감이 은연중에 드러나더라.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보다는 드라마, 그 중에서도 배우와 인물 얘기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다보니, 여러모로 술자리를 즐길 수 있던 시기였다.
드라마 볼 때,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최애작으로 꼽는 <청춘시대>가 대표적이며, <그들이 사는 세상>, <추노>, <하얀거탑>,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등등 드라마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크박스처럼 늘어놓는 작품들의 공통점이, 남주/여주 뿐 만 아니라 주변 캐릭터의 매력이 터지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주인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런 취향을 타다보니, 요새 바빠서 드라마를 거의 못 챙겨보더라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 만큼은 놓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다섯 명을 병렬적으로 메인에 배치시킨 만큼, 스토리보다도 인물 중심의 드라마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에 대한 큰 기대 없이 사는 편이라, 개인의 삶에 서사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것을 어색해 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따위에 인생을 대입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드라마적인 서사에 개인의 삶을 빙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주변인들을 엑스트라로 만드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볼 때, '리얼리티'가 얼마나 구현되었는지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다만 드라마 속 '사람'에게는 눈길이 계속 간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층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극적인 인격이 모든 사람들의 한 구석에는 당연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각자 열심히 페르소나를 쓰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 드라마에서라도 사람들의 가면을 여러 모습으로 벗겨주니 대리만족도 된다.(나름 드라마의 순기능이다!) 여타의 이유로, 드라마를 고를 때 자연스럽게 '여러 캐릭터가 매력적인가'를 따지게 된다.
<슬의>의 캐릭터들은 다양하고 매력적이다. 원픽을 하자면, 나는 익준(조정석)의 팬이다.(익준은 주인공이긴 하지만,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다.) 익준의 매력은 단순히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캐릭터이어서는 아니다. 이혼을 당한 뒤 슬퍼하다가도,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에너지를 전달한다. 압도적인 성과를 내거나 지위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가족이든 직장이든 친구관계이든 1인분은 충분히 해낸다. 시도 때도 없이 개그를 던지는 가벼움만을 보기에는 그는 훨씬 더 깊이가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많은 평론가들이 비슷한 리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캐릭터는 결코 아니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슬의>의 현실성 없음을 탓하지 않는다. 아름답지만 허구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드라마가 애써 숨기지 않고 있기에, 누구도 리얼리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매주 에피소드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오늘 익준은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궁금할 뿐이다. 약간의 긍정적인 효과를 찾을 수는 있다. 마치 성당이나 절에 가서 선한 우주의 기운을 받아오는 것처럼, <슬의>를 통해 (특히, 나는 익준 캐릭터를 통해), ‘누군가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1인분의 역할은 해내고 싶다.’라는 때늦은 패기를 가지는듯해서 괜히 훈훈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슬의>를 즐겨보다가도 어느 순간에 감정선이 정지된다. <슬의>가 CJ ENM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CJ ENM과 나, 그리고 나의 형 한빛 PD 사이에 있던 과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슬의> 자체를 둘러싼 이슈도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다.
<슬의>는 1주일에 에피소드를 한 편씩 제작한다. 제작진은 '열악한 노동시간을 해결하기 위해 주2회 편성을 포기'했다며 대대적으로 마케팅했다. 이런 메시지를 듣고 있으면,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대단히 희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CJ ENM은 <쌉니다. 천리마마트> 등에서 주1회 편성의 시장성을 확인했다.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본방사수는 줄어드는 추세에서, 주2회 편성이 큰 메리트가 없다. 심지어 CJ ENM의 다른 드라마 현장은 아직까지 열악한 경우가 많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성공시킨 신원호 PD의 작품이기에, 딱히 손해 보지 않는 것이다. 메시지를 그럴싸하게 내놓는 CJ ENM의 위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주1회 편성은 드라마 종사자들의 꿈같은 요구였고, 우리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장시간 촬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슬의>의 메시지와 시스템 개선은 현장의 작은 변화가 이루어진 것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슬의>에 대한 평가를 어찌해야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공교롭게도, 혼란에 대한 해답은 <슬의> 속에서 찾았다.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남들 보기도 너무 창피하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어요. 남편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 악착같이 건강 회복하세요”
바람 핀 남편이 준 간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삶의 의욕을 포기한 환자에게 익준이 건낸 말이다.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열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현실이라는 곳은 드라마보다도 더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공간이다. <슬의> 제작 시스템의 변화는, 지금까지 방송 현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1인분의 에너지를 전달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솔직히 저 방송국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슬의>의 익준인 것처럼 빙의해서 긍정해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드라마의 거대한 서사를 참고하는 것보다, 가면의 용도로 ‘사람’을 참고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슬의>가 주1회 편성을 통해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바를 환영한다. 이런 입장 변화가 대단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또한 내가 입장을 바꿨다고 해서 사회에 영향을 주지도 그렇다고 안 주지도 않는다. 그냥 나만의 변화일 뿐이고, 나는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시간이 소중할 뿐이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주면서, 1인분도 하고, 작은 성과도 내고 싶은데, 드라마 하나에 천착할 여유는 없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 속 캐릭터와 같은 가면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혼란을 가져다준 <슬의>가 종영했다. 그래도 이 드라마가 현실의 사람들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익준을 찍기 위해 카메라 뒤 사람들이 갈아졌다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훨씬 더 비극적인 작품이 되었을테니깐.
‘사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드라마는 언제나 기대가 된다. 하지만 한 명의 시청자로서, 그 기대보다도 슬픈 이면이 덜 보이는 촬영장을 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슬의>가 시청자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만큼 부디 다른 드라마 촬영장에도 좋은 메시지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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