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NGO 발언대] 임대차법 1년, 세입자의 안녕이 궁금하십니까 _ 이한솔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8020300095#csidx1a4b3f4f15034939bb6faa32b3e40d4
사회주택 건축을 계획할 때마다 선택의 순간이 온다. 한정된 예산을 외관에 투입할지, 내장재에 투자할지. 외관이 화려하면 당장은 임대 걱정이 없다. 하지만 수십년을 살아갈 사람에게는 편안함이 덜할 것이다. 그럴 때면 집이 무엇인지 상기한다. 집의 근본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비록 드러나진 않더라도 튼튼한 기반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래 머물 집이기에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식은 집을 지을 때는 물론, 집에 관한 정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이 개정된 지 1년, 거대 언론들은 매일같이 임대차법을 비판하고 있다. 골조는 대동소이하다. 전세가격이 폭등했다는 것. 부동산 시장은 한 가지 정책만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잊기라도 한 듯이, 전적으로 임대차법 때문에 서민들이 고통에 내몰렸다며 비난을 쏟고 있다.
상당수의 언론은 입맛에 맞는 통계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국제 전반의 부동산 가격 변화를 무시하고, 고가 아파트 중심의 전셋값 상승으로 평균을 왜곡하고, 정부 정책의 영향 등을 삭제하며 임대차법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만을 조명하는 이러한 주장을 정치권이 비판없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한편 대다수의 임차인들은 드러나지 않는 안녕을 얻었다. 임대차법 개정 이후 800만이 넘는 세입자 가구는 2년이 아니라 4년의 집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계약갱신율은 임대차법 개정 전 57.2%에서 지난 5월 77.7%까지 상승했다. 평균 거주기간은 5년에 이른다. 세입자들의 삶이 안정화되고 권리가 두터워지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부동산 정책은 아쉬움이 크다.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 시장의 투기행위 근절, 조세제도 개혁 등 근본적인 조치가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산 불평등이 심화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31년 만에 고작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이다. 임대차법의 본연의 목적은 다주택자의 이익 증대가 아니라, 세입자 권리의 보호다. 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 전반의 주거권이 두터워졌으면 성과로서는 충분하다.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지 않았기에 악법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얼마 전 전세계약 연장을 거부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임대인의 실거주 목적이 아닌 이상 임대차법상 명백한 불법이었기에 관련 내용을 알려주었고, 어렵지 않게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친구는 처음으로 정치가 내 삶에 도움이 되었다며 나에게까지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임대차법이 개정된 지 1년, 할 일은 명확하다. 부실한 통계를 근거로 과거 회귀를 운운하기보다, 법 개정 후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에 머리를 맞댈 시간이다. 집은 수십년 뒤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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